단군조선(고조선 개국) 하편
단군조선(고조선 개국) 하편
단군세기 하편
17세 단군 여을 재위 68년
여을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사(환기 5646, 신시개천 2346, 단기 782, BCE 1552)년이다.
재위52년 경신(단기 833, BCE 1501)년에 임금께서 오가와 함께 두루 나라를 순수[巡狩]하셨다. 개사성[蓋斯城] 부근에 이르시자, 푸른 도포를 입은 노인이 찬미하는 노래를 지어 바쳤다.
오랫동안 선인[仙人]의 나라에 살면서 기쁜 마음으로 선인 나라 백성이 되었네.
임금님 밝은 덕 어긋남 없고 임금님 훌륭하신 도 치우침 없으니
백성이여! 이웃이여! 근심과 괴로움을 볼 수 없어라.
책화로 믿음을 삼으시고 관경으로 은혜를 베푸시네.
성이여! 나라여! 전쟁과 정벌 따위 볼 수 없어라.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암, 그래야지. 반드시 그렇게 해야지! 짐의 덕 닦음이 일천하여 백성이 바라는 바에 보답하지 못할까 두렵도다” 하셨다.
재위 68년 병자(환기 5713, 신시개천 2413, 단기 849, BCE 1485)년에 여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동엄[冬奄]께서 즉위하셨다.
18세 단군 동엄 재위 49년
동엄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환기 5714, 신시개천 2414, 단기 850, BCE 1484)년이다.
재위 20년 병신(단기 869, BCE 1465)년에 지백특[支伯特]사람이 와서 방물을 바쳤다.
재위 49년 을축(환기 5762, 신시개천 2462, 단기 898, BCE 1436)년에 동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구모소가 즉위하셨다.
19세 단군 구모소 재위 55년
구모소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인(환기 5763, 신시개천 2463, 단기 899, BCE 1435)년이다.
재위 24년 기축(단기 922. BCE 1412)년에 남상인[南裳人]이 입조하였다.
재위 54년 기미(단기 952, BCE 1382)년에 지리숙[支離叔]이 주천력[周天曆]과 팔괘상중론[八卦相重論]을 지었다.
재위 55년 경신(환기 5817, 신시개천 2517, 단기 953, BCE 1381)년에 구모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우가 출신 고홀[固忽]이 즉위하셨다.
20세 단군 고홀 재위 43년
고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유(환기 5818, 신시개천 2518, 단기 954, BCE 1380)년이다.
재위 11년 신미(단기 964, BCE 1370)년 가을에 태양이 무지개를 꿰뚫었다.•재위 36년 병신(단기 989, BCE 1345)년에 영고탑을 개축하시고 별궁[離宮]을 지으셨다.
재위 40년 경자(단기 993, BCE 1341)년에 공공[共工]인 공홀[工忽]이 구환지도[九桓地圖]를 만들어 바쳤다.
재위 43년 계묘(환기 5860, 신시개천 2560, 단기 996, BCE 1338)년, 사해가 평안하지 못할 때 고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소태께서 즉위하셨다.
21세 단군 소태 재위 52년
소태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진(환기 5861, 신시개천 2561, 단기 997, BCE 1337)년이다. 은나라 왕 소을[小乙21세]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재위 47년 경인(단기 1043. BCE 1291)년에 은나라 왕 무정[武丁 22세]이 전쟁을 일으켜 이미 귀방[鬼方]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대군을 이끌고 삭도[索度]와 영지[令支]등 여러 나라를 침공하다가 우리 군사에게 대패하여 화친을 청하고 조공을 바쳤다.
재위 49년 임진(단기 1045, BCE 1289)년에 개사원[蓋斯原] 욕살[褥薩] 고등[高登]이 몰래 군사를 이끌고 귀방을 공격하여 멸망시키자, 일군[一郡]. 양운[養雲]두 나라가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이때 고등이 대군을 장악하고 서북 지방을 경략하니 세력이 더욱 강성해졌다. 고등이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우현왕[右賢王]이 되기를 청하였다. 임금께서 꺼리시며 윤허하지 않으시다가 거듭 청하므로 윤허하시고, 두막루[豆莫婁]라 불렀다.
재위 52년 을미(단기 1048, BCE 1286)년에 우현왕 고등이 훙서[薨逝]하고, 손자 색불루[索弗婁]가 우현왕을 계승하였다.
임금께서 나라를 순수하시다가 남쪽 해성[海城]에 이르러 부로[父老]들을 크게 모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노래와 춤을 즐기셨다. 이때 오가[五加]를 모아 놓고 옥좌를 양위할 일을 함께 의논할 때 “내가 이제 늙어 일하기가 고달프다”라고 말씀하시고, “서우여[徐于餘]에게 정사를 맡기겠노라” 하셨다. 이에 살수[薩水] 주위의 땅 백 리를 분봉하여 섭주[攝主]로 삼고 기수[奇首]라 하셨다.
우현왕이 소식을 듣고 임금께 사람을 보내어 멈추시기를 청하였으나, 임금께서 끝내 듣지 않으시므로 우현왕이 좌우의 사람들과 사냥꾼 수천 명을 이끌고 부여 신궁[夫餘新宮]에서 단군으로 즉위하였다. 이에 임금께서 부득이 옥책[玉冊]과 국보[國寶]를 우현왕에게 전하고, 서우여를 폐하여 서인으로 만드셨다. 임금께서 아사달에 은거하여 그곳에서 최후를 마치셨다.
이때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로서 왕위를 사양하고 달아나 동해 쪽 물가에 살면서 스스로 밭을 일구어 먹고 살았다.
22세 단군 색불루 재위 48년
색불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신(환기 5913, 신시개천 2613, 단기 1049, BCE 1285)년이다. 임금께서 녹산[鹿山]의 성[城]을 개축하게 하고 관제를 개혁하셨다. 가을 9월에 장당경에 행차하여 종묘[宗廟]를 세우고 (할아버지) 고등[高登]왕에게 제사를 지내셨다[立廟祀高登王]. 11월에 친히 구환의 군사를 이끌고 여러 차례 전투를 벌여 은나라 수도를 함락하고 잠시 강화[講和]하였으나, 또 다시 싸워 크게 격파하셨다.
이듬해 2월에 황하 상류[河上]까지 추격하여 대첩의 하례[賀禮]를 받으시고, 회수와 태산 지역에 변한[弁韓] 백성을 이주시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게 하시어 국위를 크게 떨쳤다.
재위 6년 신축(단기 1054, BCE 1280)년에 신지 육우[陸右]가 주청하기를, “아사달은 천년 제업[帝業]의 땅이나 대운이 이미 다했고 영고탑은 왕기가 농후하여 백악산보다 나으니, 청하옵건대 그곳에 성을 쌓고 천도하시옵소서” 하니, 임금께서 윤허하지 않고 말씀하시기를, “새 수도에 이미 자리를 잡았거늘 어찌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기리오” 하셨다.
재위 20년 을묘(단기 1068, BCE 1266)년에 이르러 남국[藍國]이 자못 강성하여 고죽국[孤竹國]왕과 더불어 모든 도적을 쫓아 버렸다. 남쪽으로 옮겨 엄독홀[奄潼忽]에 이르러 머무르니 그곳은 은나라 국경과 가까운 곳이었다.
임금께서 여파달[黎巴達]로 하여금 병력을 나누어 빈[邠].기[岐] 땅으로 진격하게 하시고, 그곳 유민과 서로 단합하여 나라를 세워, 그 이름을 여[黎]”라 하셨다. 이들을 서쪽 융족과 더불어 은나라의 제후국들 안에 뒤섞여 살게 하셨다.
남씨의 위세가 매우 강성해지고, 임금의 덕화가 멀리 항산[恒山] 이남의 땅까지 미쳤다.
재위 36년 신미(단기 1084, BCE 1250)년에 변방 장수 신독[申督]이 난을 일으켜 임금께서 잠시 영고탑으로 피난하시니 많은 백성이 뒤를 따랐다.
재위 48년 계미(환기 5960, 신시개천 2660, 단기 1096, BCE 1238)년에 색불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아홀께서 즉위하셨다.
23세 단군 아홀 재위 76년
아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5961, 신시개천 2661, 단기 1097, BCE 1237)년이다. 아우 고불가[固弗加]에게 명하여 낙랑홀[樂浪忽]을 다스리게 하시고, 웅갈손[熊乫孫]을 보내어 남국[藍國] 왕과 함께 남방을 정벌하는 군대를 살피게 하셨다.
은나라 땅에 여섯 읍[邑]을 설치할 때, 은나라 사람과 서로 다투어 결판이 나지 않으므로 병력을 진군시켜 이를 격파하셨다.
가을 7월에 임금께서 신독을 베고 환도하여 죄수와 포로를 석방하라고 명하셨다.
재위 2년 을유(단기 1098, BCE 1236)년, 남국 왕 금달[今達]이 청구국 왕, 구려국 왕과 더불어 주개[周愷]에서 만나 몽고리의 군대와 합세하여 이르는 곳마다 은나라 성책을 부수고 오지[奧地]로 깊숙이 들어갔다.
아홀단군께서 회대[淮岱](회수와 태산) 땅을 평정하고 포고씨[蒲古氏]를 엄[淹]에, 영고씨[盈古氏]를 서[徐]에, 방고씨[邦古氏]를 회[淮]에 봉하시니 은나라 사람이 이것을 보고 겁내어 감히 근접하지 못하였다.
재위 5년 무자(단기 1101. BCE 1233)년에 임금께서 이한[二韓](번한, 마한)과 오가[五加]를 불러 영고탑으로 도읍을 옮기는 일에 대한 의논을 중지시키셨다.
재위 76년 기해(환기 6036, 신시개천 2736, 단기 1172, BCE 1162)년 아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연나[延那]께서 즉위하셨다.
24세 단군 연나 재위 11년
연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자(환기 6037, 신시개천 2737, 단기 1173, BCE 1161)년이다. 임금께서 숙부 고불가[固弗加]에게 명하여 섭정을 맡기셨다.
재위 2년 신축(단기 1174, BCE 1160)년에 모든 왕이 조칙을 받들어 소도[蘇塗]를 증설하여 하늘에 제사 지내고, 국가에 대사가 있거나 재앙이 있으면 곧 (하늘에) 기도를 드리고 백성의 뜻을 하나로 모았다.
재위 11년 경술(환기 6047, 신시개천 2747, 단기 1183, BCE 1151)년에 연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솔나[率那]께서 즉위하셨다.
25세 단군 솔나 재위 88년
솔나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해(환기 6048, 신시개천 2748, 단기 1184, BCE 1150)년이다.
재위 37년 정해(단기 1220, BCE 1114)년에 기자[箕子]가 서화[西華]에 살면서 인사를 사절하였다.
재위 47년 정유(단기 1230, BCE 1104)년에 임금께서 상소도[上蘇塗]에서 고례[古禮]를 강론하시다가, 아첨하는 신하[侫臣]와 올곧은 신하[直臣]의 차이를 물으셨다. 삼랑[三郞] 홍운성[洪雲性]이 나아가 아뢰었다.
“올바른 이치를 굳게 지켜 굽히지 않는 자는 직신[直臣]이요, 권위를 두려워하여 자기 뜻을 굽혀 복종하는 자는 영신[侫臣]입니다. 임금은 근원이요 신하는 지류이니, 근원이 이미 탁하거늘 지류가 맑기를 바란다면 이는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군왕이 성군이라야 신하가 올곧은 신하가 되는 것이옵니다.”
임금께서 “그대 말이 옳도다” 하셨다.
재위 59년 기유(단기 1242, BCE 1092)년에 밭곡식이 잘 여물어 한 줄기에 다섯 이삭이 패었다.
재위 88년 무인(환기 6135, 신시개천 2835, 단기 1271, BCE 1063)년에 솔나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추로[鄒魯]께서 즉위하셨다.
26세 단군 추로 재위 65년
추로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묘(환기 6136, 신시개천 2836, 단기 1272, BCE 1062)년이다. 가을 7월에 백악산 계곡에 흰 사슴 200마리가 떼를 지어 와서 놀았다.
재위 65년 계미(환기 6200, 신시개천 2900, 단기 1336, BCE 998)년에 추로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두밀께서 즉위하셨다.
27세 단군 두밀 재위 26년
두밀단군의 재위 원년은 갑신(환기 6201, 신시개천 2901, 단기 1337, BCE 997)년이다. 천해[天海]의 물이 넘치고 사아란산[斯阿蘭山]이 무너졌다. 이 해에 수밀이국[須密爾國]. 양운국[養雲國]. 구다천국[句茶川國]이 모두 사신을 보내 방물을 바쳤다.
재위 8년 신묘(단기 1344, BCE 990)년에 심한 가뭄이 든 뒤에 큰비가 내려 백성들이 곡식을 거둬들이지 못하였다. 임금께서 곡물 창고를 열어 두루 나누어 주게 하셨다.
재위 26년 기유(환기 6226, 신시개천 2926, 단기 1362, BCE 972)년에 두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해모[奚牟]가 즉위하셨다.
28세 단군 해모 재위 28년
해모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술(환기 6227, 신시개천 2927, 단기 1363, BCE 971)년이다. 임금께서 병이 나자 흰옷 입은 동자[白衣童子]로 하여금 하늘에 기도하게 하니 얼마 되지 아니하여 나으셨다.
재위 11년 경신(단기 1373, BCE 961)년 여름 4월에 회오리바람이 크게 일어나고 폭우가 쏟아져 땅 위에 물고기가 어지럽게 떨어졌다.
재위 18년 정묘(단기 1380, BCE 954)년에 빙해 지역 여러 왕[汗]이 사신을 보내 조공을 바쳤다.
재위 28년 정축(환기 6254, 신시개천 2954, 단기 1390, BCE 944)년에 해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마휴[摩休]가 즉위하셨다.
29세 단군 마휴재위 34년
마휴단군의 재위 원년은 무인(환기 6255. 신시개천 2955, 단기 1391, BCE 943)년이다. 주[周]나라 사람이 공물을 바쳤다.
재위 8년 을유(단기 1398, BCE 936)년 여름에 지진이 있었다.
재위 9년 병술(단기 1399, BCE 935)년에 남해 조수[潮水]가 석자 후퇴했다.
재위 34년 신해(환기 6288, 신시개천 2988, 단기 1424, BCE 910)년에 마휴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내휴[柰休]가 즉위하셨다.
30세 단군 내휴 재위 35년
내휴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자(환기 6289, 신시개천 2989, 단기 1425, BCE 909)년이다. 임금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여 청구[靑邱]의 정치 상황을 돌아보고 돌에 치우천황의 공덕을 새기셨다. 서쪽으로 엄독홀에 이르러 분조[分朝]의 모든 왕을 모아 열병하신 후 하늘에 제사 지내고, 주[周]나라와 수교하셨다.
재위 5년 병진(단기 1429, BCE 905)년, 흉노[匈奴]가 공물을 바쳤다.
재위 35년 병술(환기 6323, 신시개천 3023, 단기 1459, BCE 875)년에 내휴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등올[登屼]께서 즉위하셨다.
31세 단군 등을 재위 25년
등올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해(환기 6324, 신시개천 3024, 단기 1460, BCE 874)년이다.
재위 16년 임인(단기 1475, BCE 859)년에 봉황이 백악산에서 울고 기린이 상원[上苑]에 와서 놀았다.
재위 25년 신해(환기 6348, 신시개천 3048, 단기 1484, BCE 850)년에 등올단군께서 붕어하셨다. 아들 추밀[鄒密]께서 즉위하셨다.
32세 단군 추밀 재위 30년
역주·추밀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자(환기 6349, 신시개천 3049, 단기 1485, BCE 849)년이다.
재위 3년 갑인(단기 1487, BCE 847)년에 선비산[鮮卑山] 추장 문고[們古]가 공물을 바쳤다.
재위 12년 계해(단기 1496, BCE 838)년에 초[楚]나라 대부 이문기[李文起]가 입조[入朝]하였다.
재위 13년 갑자(단기 1497, BCE 837)년 3월에 일식이 있었다.
재위 15년 병인(단기 1499, BCE 835)년에 농작물에 심한 흉년이 들었다.
재위 30년 신사(환기 6378, 신시개천 3078, 단기 1514, BCE 820)년에 추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감물[甘勿]께서 즉위하셨다.
33세 단군 감물 재위 24년
감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오(환기 6379, 신시개천 3079, 단기 1515, BCE 819)년이다.
재위 2년 계미(단기 1516, BCE 818)년에 주[周]나라 사람이 와서 호랑이와 코끼리 가죽을 바쳤다.
재위 7년 무자(단기 1521, BCE 813)년에 영고탑 서문 밖 감물산[甘勿山] 아래에 삼성사[三聖祠]를 세우고 친히 제사를 드렸는데, 그 서고문[誓告文]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 분 성조(환인 · 환웅· 단군)의 높고도 존귀하심은
삼신과 더불어 공덕이 같으시고
삼신(상제님)의 덕은 세 분 성조로 말미암아 더욱 성대해지도다.
텅빔(무)과 꽉 참(유)은 한 몸이요[虛粗同軆]
낱낱[個]과 전체[全]는 하나이니[個全一如].
지혜와 삶 함께 닦아[智生雙修] 내 몸과 영혼 함께 뻗어나가네[形魂俱衍].
참된 가르침이 이에 세워져 믿음이 오래면 스스로 밝아지리라.
삼신의 힘을 타면 존귀해지나니 빛을 돌려 내 몸을 살펴보세.
저 높고 가파른 백악산은 만고에 변함없이 푸르구나.
역대 성조께서 대를 이어 예악을 찬란히 부흥시키셨으니
그 규모 이토록 위대하여 신교의 도술 깊고도 광대하여라
하나[一氣]속에 셋(삼신)이 깃들어 있고[執一含三],
세 손길로 작용하는 삼신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나니[會三歸一].
하늘의 계율 널리 펴서 영세토록 법으로 삼으리.
재위 24년 을사(환기 6402, 신시개천 3102, 단기 1538, BCE 796)년에 감물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오루문[奧婁門]께서 즉위하셨다.
34세 단군 오루문 재위 23년
오루문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오(환기 6403, 신시개천 3103, 단기 1539, BCE 795)년이다. 이 해에 오곡이 풍성하게 잘 익어 만백성이 기뻐하며 도리가[兜里歌]를 지어 부르니 그 가사는 이러하다.
하늘에 아침 해 솟아 밝은 빛 비추고
나라에 성인이 계셔 후덕한 가르침 널리 미치도다.
큰 나라 우리 배달 성조[聖朝]여!
많고 많은 사람들 가혹한 정치 당하지 않아
즐겁고 화평하게 노래하니 늘 태평성대로!
재위 10년 을묘(단기 1548, BCE 786)년, 두 개의 해가 함께 뜨고 누런 안개가 사방을 덮었다.
재위 23년 무진(환기 6425, 신시개천 3125, 단기 1561, BCE 773)년에 오루문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사벌[沙伐]께서 즉위하셨다.
35세 단군 사벌 재위 68년
사벌단군의 재위 원년은 기사(환기 6426, 신시개천 3126, 단기 1562, BCE 772)년이다.
재위 6년 갑술(단기 1567, BCE 767)년, 이 해에 누리가 날뛰고 홍수가 있었다.
재위 14년 임오(단기 1575, BCE 759)년에 범이 궁전에 들어왔다.
재위 24년 임진(단기 1585, BCE 749)년에 홍수가 나서 산이 무너지고 골짜기가 메워졌다.
재위 50년 무오(단기 1611, BCE 723)년에 임금께서 장수 언파불합[彦波弗哈]을 보내어 바다 위의 응습[熊襲](구마소)을 평정하셨다.
재위 66년 갑술(단기 1627, BCE 707)년에 임금께서 조을[祖乙]을 보내어 곧장 연[燕]나라 수도로 진격하게 하시니, 제[齊]나라 군대와 더불어 임치[臨淄] (제나라 수도) 남쪽 들판에서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고 고하였다.
재위 68년 병자(환기 6493, 신시개천 3193, 단기 1629, BCE 705)년에 사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매륵[買勒]께서 즉위하셨다.
36세 단군 매륵 재위 58년
매륵단군의 재위 원년은 정축(환기 6494, 신시개천 3194, 단기 1630, BCE 704)년이다.
재위 28년 갑진(단기 1657, BCE 677)년에 지진과 해일이 일어났다.
재위 32년 무신(단기 1661, BCE 673)년에 서쪽 마을 민가에서 다리가 여덟 개 달린 송아지가 태어났다.
재위 35년 신해(단기 1664, BCE 670)년에 용마[龍馬]가 천하[天河]에서 나왔는데 등에 별무늬가 있었다.
재위 38년 갑인(단기 1667, BCE 667)년, 협야후[陜野侯] 배반명[裵幋命]을 보내어 해상의 적을 토벌하게 하셨다. 12월에 삼도[三島](일본을 구성하는 세 섬, 곧 큐슈, 혼슈, 시코쿠)를 모두 평정하였다.
재위 52년 무진(단기 1681, BCE 653)년에 임금께서 병력을 보내 수유국[須臾國] 군대와 더불어 연[燕]나라를 정벌하자 연나라 사람이 제[齊]나라에 위급을 고했다. 제나라 사람들이 대거 고죽[孤竹]으로 쳐들어오다가 아군의 복병을 만나 전세가 불리하자, 화친을 구걸하고 물러갔다.”
재위 58년 갑술(환기 6551, 신시개천 3251, 단기 1687, BCE 647)년에 매륵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마물[麻勿]께서 즉위하셨다.
37세 단군 마물 재위 56년
마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을해(환기 6552, 신시개천 3252, 단기 1688, BCE 646)년이다.
재위 56년 경오(환기 6607, 신시개천 3307, 단기 1743, BCE 591)년에 임금께서 남쪽으로 순수하시다가 기수에 이르러 붕어하셨다. 태자 다물[多勿]께서 즉위하셨다.
38세 단군 다물 재위 45년
다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신미(환기 6608, 신시개천 3308, 단기 1744, BCE 590)년이다.
재위 45년 을묘(환기 6652, 신시개천 3352, 단기 1788, BCE 5460년에 다물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두홀[豆忽]께서 즉위하셨다.
39세 단군 두홀 재위 36년
두홀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진(환기 6653, 신시개천 3353, 단기 1789, BCE 545)년이다.
재위 36년 신묘(환기 6688, 신시개천 3388, 단기 1824, BCE 510)년에 두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달음[達音]께서 즉위하셨다.
40세 단군달음 재위 18년
달음단군의 재위 원년은 임진(환기 6689, 신시개천 3389, 단기 1825, BCE 509)년이다.
재위 18년 기유(환기 6706, 신시개천 3406, 단기 1842, BCE 492)년에 달음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음차[音次]께서 즉위하셨다.
41세 단군 음차 재위 20년
음차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술(환기 6707, 신시개천 3407, 단기 1843, BCE 491년이다.
재위 20년 기사(환기 6726, 신시개천 3426, 단기 1862, BCE 472)년에 음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을우지[乙于支]께서 즉위하셨다.
42세 단군을우지 재위 10년
을우지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오(환기 6727, 신시개천 3427, 단기 1863, BCE 471)년이다.
재위 10년 기묘(환기 6736, 신시개천 3436, 단기 1872, BCE 462)년에 을우지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물리[勿理]께서 즉위하셨다.
43세 단군 물리 재위 36년
물리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환기 6737, 신시개천 3437, 단기 1873, BCE 461)년이다.
재위 36년 을묘(환기 6772, 신시개천 3472, 단기 1908, BCE 426)년에 융안[隆安]의 사냥꾼 우화층[于和冲]이 스스로 장군이라 칭하고 무리 수만 명을 모아 서북 36군[郡]을 함락시켰다. 임금께서 군사를 보내셨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겨울에 이 역적이 도성을 포위하고 급히 공격하므로 임금께서 좌우 궁인과 더불어 종묘와 사직의 신주[神主]를 받들고 배를 타고 내려가다가 해두[海頭]에 이르렀는데 얼마 있지 않아 붕어하셨다. 이 해에 백민성[白民城] 욕살 구물[丘勿]이 천명을 받들어 병사를 일으켜 먼저 장당경[藏唐京]을 점령하자, 아홉 지역의 군사가 추종하고 동서압록의 열여덟 성이 모두 군사를 보내 원조하였다.
44세 단군 구물 재위 29년
구물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진(환기 6773, 신시개천 3473, 단기 1909, BCE 425)년이다. 3월에 홍수로 도성이 잠기자 역적들이 크게 어지러워졌다. 구물이 병사 1만명을 이끌고 가서 토벌하자, 역적들은 싸워 보지도 못하고 스스로 궤멸하였다. 마침내 우화층을 잡아 참수하였다. 이에 구물이 모든 장수의 추대를 받아 3월 16일에 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 지내고 장당경에서 즉위하였다.
구물단군께서 국호를 대부여[大夫餘]로 바꾸고, 삼한[三韓] 삼조선[三朝鮮]으로 바꾸셨다. 이로부터 삼조선이 비록 대단군을 받들어 한 분이 다스리는 제도는 그대로 유지하였으나 화전[和戰]의 권한(병권兵權)은 단군 한 분에게 있지 않았다.
7월에 해성[海城]을 개축하여 평양[平壤]이라 하고 별궁[離宮]을 지으셨다.
재위 2년 정사(단기 1910, BCE 424년에 예관[禮官]이 삼신영고제[三神迎鼓祭]를 올리기를 청하니 3월 16일 (대영절大迎節)이었다. 임금께서 친히 납시어 경배하실 때, 초배에 세 번 조아리고, 재배에 여섯 번 조아리고, 삼배에 아홉 번 조아리는 것이 예[禮]이지만, 무리를 따라 특별히 열 번 조아리셨다. 이것이 삼육대례[三六大禮]이다.
재위 17년 임신(단기 1925, BCE 409)년에 임금께서 각 주군[州郡]에 감찰관을 보내어 관리와 백성을 규찰[糾察]하고, 효자와 청렴한 선비를 천거하게 하셨다.
재위 23년 무인(단기 1931, BCE 403)년에 연나라에서 사신을 보내 신년 하례를 올렸다.
재위 29년 갑신(환기 6801, 신시개천 3501, 단기 1937, BCE 397)년에 구물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여루[余婁]께서 즉위하셨다.
45세 단군 여루 재위 55년
여루단군의 재위 원년은 을유(환기 6802, 신시개천 3502, 단기 1938, BCE 396)년이다.
장령[長嶺]. 낭산[狼山]에 성을 쌓았다.
재위 17년 신축(단기 1954, BCE 380)년에 연나라 사람이 변방을 침범하자 그곳을 지키던 장수 묘장춘[苗長春]이 이를 쳐서 물리쳤다.
재위 32년 병진(단기 1969, BCE 365)년에 연나라 사람들이 이틀길을 하루에 달려 쳐들어와 요서를 함락하고 운장[雲障]지방을 핍박하였다.
번조선[番朝鮮] 왕이 상장 우문언[于文言]에게 명하여 막게 하고, 진[眞]·막[莫] 두 조선도 역시 군대를 보내 구원하였다. 복병을 두어 협공하여 연[燕].제[齊] 두 나라의 군대를 오도하[五道河]에서 깨뜨리고 요서 지방의 성을 모두 회복하였다.
재위 33년 정사(단기 1970, BCE 364)년에, 연나라 사람들이 패한 뒤에도 연운도[連雲島]에 주둔하면서 배를 만들어 장차 쳐들어오려 하였다. 우문언이 추격하여 대파하고 그 장수를 쏘아 죽였다.
재위 47년 신미(단기 1984, BCE 350)년에 북막[北漠]추장 액니거길[厄尼車吉]이 내조[來朝]하여 말 2백 필을 바치고 함께 연[燕]을 치자고 청하였다. 이에 번조선 소장[少將] 신불사[申不私]로 하여금 병사 1만 명을 거느리게 하시니 연나라 상곡[上谷]을 함께 공격하여 함락하고 성읍[城邑]을 설치하였다.
재위 54년 무인(단기 1991, BCE 343)년, 상곡 싸움 이후로 연나라가 해마다 쳐들어오다가 이때에 사신을 보내 강화를 청하자, 이를 윤허하시고 다시 조양[造陽]의 서쪽으로 경계를 삼으셨다.
재위 55년 기묘(환기 6856, 신시개천 3556, 단기 1992, BCE 342)년, 여름에 큰 가뭄이 들자 임금께서 원통하게 옥살이하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하여 대사면을 내리고, 친히 납시어 기우제를 지내셨다.
9월에 여루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태자 보을[普乙]께서 즉위하셨다.
46세 단군 보을 재위 46년
보을단군의 재위 원년은 경진(환기 6857, 신시개천 3557, 단기 1993, BCE 341)년이다. 12월에 번조선 왕 해인[解仁]이 연나라에서 보낸 자객에게 시해[弑害]를 당하였다. 오가[五加]가 서로 권력을 다투었다.
재위 19년 무술(단기 2011, BCE 323)년 정월에 읍차[邑借] 기후[箕詡]가 병사를 이끌고 번조선 궁에 진입하여 스스로 70세 번조선 왕이 되고, 사람을 보내어 윤허를 청하였다. 임금께서 윤허하시고 연나라에 대한 방비를 강화하게 하셨다.
재위 38년 정사(단기 2030, BCE 304)년에 도성(장당경)에 큰 불이 일어나 모두 타 버리자 임금께서 해성[海城]의 별궁으로 피하셨다.
재위 44년 계해(단기 2036, BCE 298)년에 북막 추장 이사[尼舍]가 음악을 지어 바치니 임금께서 이를 받으시고 후히 상을 내리셨다.
재위 46년 을축(환기 6902, 신시개천 3602, 단기 2038, BCE 296)년에 한 개[韓介]가 수유[須臾]의 병사를 이끌고 궁궐을 침범하여 스스로 임금 자리에 올랐다. 이에 상장 고열가[高列加]가 의병을 일으켜 한개를 격파하였다. 임금께서 환도하고 대사면을 내리셨다. 이로부터 나라의 힘이 심히 미약해지고 살림살이가 넉넉지 못하더니 얼마 있지 않아 보을단군께서 붕어하셨다. 후사는 없었다.
고열가가 43세 물리[勿理]단군의 현손으로 백성의 사랑과 공경을 받고 또한 공로가 많으므로 드디어 추대를 받아 즉위하셨다.
47세 단군 고열가 재위 58년
고열가단군의 재위 원년은 병인(환기 6903, 신시개천 3603, 단기 2039, BCE295)년이다.
재위 14년 기묘(단기 2052, BCE 282)년에 임금께서 백악산에 단군왕검의 사당을 세워 유사[有司]로 하여금 계절마다 제사 지내게 하시고, 임금께서는 일 년에 한 번씩 친히 제사를 드리셨다.
재위 44년 기유(단기 2082, BCE 252)년에 연나라가 사신을 보내어 신년 하례를 올렸다.
재위 48년 계축(단기 2086, BCE 248)년 10월 초하루에 일식이 있었다. 이 해 겨울에 북막 추장 아리당부[阿里當夫]가 연나라를 정벌하는데 출병해 주기를 청하였다. 임금께서 응하지 않으시자, 원망하여 이후로 조공을 바치지 않았다.
재위 57년 임술(환기 6959, 신시개천 3659, 단기 2095, BCE 239)년 4월 8일에 해모수가 응심산[熊心山]으로 내려와 군사를 일으켰다. 해모수의 선조는 고리국[槀離國] 사람이다.
재위 58년 계해(환기 6960, 신시개천 3660, 단기 2096, BCE 238)년, 임금께서 어질고 인자하시나 우유부단하여 명령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리하여 여러 장수가 자신의 용맹을 믿고 화란을 자주 일으켰다. 나라 살림은 쪼들리고 백성의 기운도 더욱 쇠약해졌다.
3월 제천[祭天]을 행한 날 저녁에, 임금께서 오가[五加]와 더불어 의논하여 말씀하셨다. “옛날 우리 성조들께서 처음으로 법도를 만들고 국통[國統]을 세워 후세에 전하셨노라. 덕을 펴심이 넓고도 멀리 미쳐 만세의 법이 되어 왔느니라. 그러나 이제 왕도가 쇠미하여 모든 왕[汗]이 세력을 다투고 있도다. 짐이 덕이 부족하고 나약하여 능히 다스릴 수 없고, 이들을 불러 무마시킬 방도도 없으므로 백성이 서로 헤어져 흩어지고 있느니라.
너희 오가는 현인을 택하여 단군으로 천거하라.”
옥문을 크게 열어 사형수 이하 모든 포로를 석방하셨다.
이튿날 임금께서 마침내 제위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 수도하여 선인[仙人]이 되셨다. 이에 오가[五加]가 6년(단기 2096, BCE 238~단기 2102, BCE 232) 동안 국사를 공동으로 집행하였다. 이에 앞서 종실[宗室]인 대해모수께서 은밀히 수유국[須臾國]과 약속을 하고, 옛 도읍지 백악산을 습격하여 점거한 뒤에 스스로 천왕랑[天王郞]이라 칭하셨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두 해모수의 명을 따랐다. 이때에 해모수께서 모든 장수를 봉하면서 수유후[須臾候] 기비[箕丕]를 올려 세워 번조선 왕으로 삼아(단기 2102, BCE 232) 상·하 운장을 지키게 하셨다. 대개 북부여가 발흥한 것은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고구려는 해모수께서 태어난 고향이므로 북부여를 또한 고구려라고도 불렀다.
단군기원[檀君紀元] 원년 무진(환기 4865, 신시개천 1565, BCE 2333)년부터 지금의 주상(고려 공민왕)께서 보위에 오르신 이후 12년째 되는 계묘(환기 8560, 신시개천 5260, 단기 3696, 서기 1363)년까지가 무릇 3,696년이라. 이 해 10월 3일에 홍행촌수[紅杏村叟]가 강화도의 해운당[海雲堂]에서 이 글을 쓰노라.
{단군세기 종[檀君世記 終]} <환단고기 역사책 원문 옮김>